일상의 모든 것으로 만드는 이야기

올해로 2년 차를 맞이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오지영은 예술과 사람들의 ‘거리감’에 관해서도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홀로 존재하는 고고한 무언가가 예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작가의 작업과 갤러리 전시의 출발선에는 ‘일상’이 있다. “일상의 모든 것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 어느 공간의 인테리어, 작가와의 대화, 여행…. 흔히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이루어지는 모든 것으로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걸 실현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점이 갤러리를 운영하며 생각하는 가장 큰 부분입니다.”


실제로 크고 작은 수많은 갤러리는 작가의 새로운 작업과 작품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플랫폼’, 즉 창구로서 기능한다. 관객들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며 오지영 디렉터가 느낀 점도 여럿 있다. 때로는 작품 자체에 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작품과 공간이 어우러진 점에 관한 이야기도 듣는다. “공간의 운영자 관점으로 우리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업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매번 혼자 전시를 보러 오는 분들이 계세요. 어떤 관객분들은 작가나 공간의 의도와는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기도 해요. 개인 취향에 따라서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해석도 변하는 셈이죠.”
작가, 전시, 공간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기 위한 기준은 존재할까? 작가를 직접 고르고 접촉하는 오지영이 기성 예술계가 이미 주목한 작가에게만 손을 내미는 것은 아니다. 패션을 넘어서 사진계 전반에 큰 화제를 몰고 온 민현우 Min Hyunwoo 작가의 사진전 <더 시 이즈 웰 / 위 아 고잉 투 리브 디스 섬머 THE SEA IS WELL / We Are Going To Live This Summer>와 바로 직전까지 열었던 차예원 작가의 전시는 두 작가의 첫 개인전이었다. “전시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작가와도 몇 차례 작업했어요. 작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작가와도 전시해보았고요. 그분들에게 전시 제안을 하면, 먼저 쑥스러워하세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든지, 작품이 미숙하다는 식으로요.” 오지영에게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작가들이 지금까지 작업한 기간이나 전시 횟수 같은 문제는 아니다. 그는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작품을 보면, 이 공간에서 어떻게 전시할지 50%에서 60% 정도는 떠오른다고 했다. “작가들이 전시를 열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때, 오히려 전시를 열어보자고 독려하는 게 갤러리의 역할 아닌가 싶어요. 이미 작업을 아는 주변 사람들과 작가가 작품을 보고 고민하는 것은 지금껏 해온 일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작업을 볼 때 나오는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라고 제안하죠.”


모두를 동일하게 재단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예술 작가는 작품 규모와 관계없이 자신의 ‘세계관’을 만드는 사람이다. ‘전시’로서 사람들을 만나면, 때로는 작업의 방향성에 관한 힌트가 나타난다. 때로는 작가의 감정과 사람들의 반응을 마주하고 드는 다음 단계가 보이기도 한다. “차예원 작가도 관객들의 많은 반응을 들었어요. 자기 작품 중 어떤 건 싫고, 어떤 건 좋은데 왜 사람들이 ‘이걸 좋아하지?’ 얘기하기도 하고, 그만큼 고민도 들죠. 전시 경험이 부족한 작가들도 전시를 마치면 생각이 아주 많아져요.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갤러리 샌드위치 apt는 작가와 작품 특성에 맞춰서 공간 자체를 변주하는 데 신경을 썼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하얗고 텅 빈 갤러리 대신, 전시 형태에 따라서 공간 자체가 극단적으로 달라지기도 했다. 오지영은 팝업 매장처럼 움직이는 갤러리가 아니라 한정된 공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변화라고 했다.

실제로 2020년 5월 23일에 선보인 노즈 스튜디오 Nose Studio의 <디지털 유머 Digital Humour> 전시는 공간의 3분의 1을 임시 벽으로 막았다. 그 전시를 보고 다시 방문한 관객들은 ‘이 공간이 그 공간이었어요?’ 하고 놀라기도 한다. “주제나 작품과 어울릴 때, 작가와 대화하면서 작품과 공간 구성을 함께 고민해요. 공간이 크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이 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화를 주는 거죠. 작품을 보는 데 누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어우러지게끔 말이죠.”
서울과 거리

서울은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도시다. 오지영은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편이다. “물론 오랜 세월 유지한 도시와 풍경, 건물 같은 걸 동경하는 분들도 계세요. 카페, 갤러리, 빵집…. 유행처럼 우후죽순 생기는 공간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굉장한 도전이고, 좋은 움직임 아닐까요. 실패하더라도 그게 지금 서울의 한순간을 이루는 데다, 하나의 문화일 수 있잖아요.”


어릴 때부터 그는 서울의 다양한 공간을 방문했다. 하지만 특정한 곳보다 매일 지나는 ‘거리 street’에 항상 더 큰 애정을 느꼈다. 번화한 카페 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오래된 건물 하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성수동의 흔한 풍경인 사고 차량의 박살 난 부품 같은 것들 말이다. “을지로의 수많은 공장과 철근 같은 부자재를 보면서 영감받을 때도 있어요.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으로도 말이죠. 날씨 좋은 날, 걸으며 보는 ‘길거리’ 풍경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겨울의 코트와 휴식


옷을 고르는 오지영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벼움’이다. “예전에는 멋 부린다고 무거운 무톤 재킷이나 코트도 입고, 여러 벌을 겹쳐서 입고는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거추장스러워졌고, 무거운 옷을 입으면 기분도 좀 가라앉았어요. 몸이 불편해지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가볍고, 따뜻한 코트와 스웨터 위주로 겨울을 나고 있어요.”


겨울 외투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코트’라고 했다. 물론 가벼워야 한다. “약간 헐렁한 실루엣을 좋아하거든요. 몸에 딱 붙는 상의는 잘 입지 않아요. 큰 옷에 익숙해서 그런지,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넉넉하고 따뜻한 코트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깨끗한 실루엣과 간결한 디자인의 헐렁한 회색 코트 안에 그는 종종 색으로 포인트를 준다. 오늘 입은 분홍 치마도 마찬가지다. “조금 긴 치마를 입는다든지, 전부 검정으로 입고 양말처럼 작은 부분으로 변주하는 걸 좋아해요.”

갤러리가 문을 닫아도 그는 바쁜 일상을 이어간다. 갤러리 샌드위치 apt는 전시가 있는 날을 기준으로 월요일과 화요일에 문을 닫는다. 개장한 날이면 돌아다닐 시간이 없다. “그래서 쉴 때는 집안일을 몰아서 하거나, 개인적인 일정을 보거나, 괜찮은 오브제를 파는 공간에 들르거나 카페에 가기도 해요. 보통 화요일에는 ‘갤러리 투어’를 다니는 편이에요.”
패션과 예술의 접점들

오지영은 지금껏 패션에 기반을 두고 일했다. 어찌 보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영역인 ‘예술’을 중심에 둔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분야에도 접점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와 예술 작가는 모두 대중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람 아닐까요? 시각적으로 먼저 보여주고, 과하게 설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죠. 요즘 패션 매장을 보면 과거처럼 판매 공간만 있는 게 아니라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가죠. 예술가와 협업하여 만든 구조물이나 설치물을 매장 안에 놓기도 하고, 곳곳에 작품을 걸어두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실제로 사람들은 하이브리드 hybrid, 즉 모든 문화가 혼합한 면모를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감싼 수많은 문화가 이미 하나의 뿌리를 두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인테리어에 굉장히 높은 관심이 있어요. 패션 매장에 가도 옷만 사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보고, 다시 올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해내죠. 점점 더 전체적인 걸 보는 셈이에요. 여기에 패션과 예술의 접점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 접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되, 설득 과정은 대중이 취하도록 하는 거죠.”
2020년의 시간들


잡지사에 다닐 때부터 그는 일 자체를 좋아했다.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거나 자신을 알리는 작업도 어느 정도 필요했지만, 그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 한 공간의 대표가 된 지금은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과하지 않게 관계를 이어갈까 생각해요. 다음 생에는 인플루언서로 태어나자고 다짐할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해서 말이죠.” (웃음)


인스타그램 시대인 지금은 분야를 막론하고 홍보로 흥한 곳이 넘쳐난다. 그러나 시대 기준을 열심히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매력과 힘이 실제로 반감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7월에 문을 연 갤러리 샌드위치 APT는 2020년을 끊임없는 전시의 해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거센 여파는 갤러리와 전시 일정에 큰 차질을 주었다. “2020년에는 한 달 주기로 열 번 이상 전시를 열려고 계획했어요. 결국 올해는 세 번밖에 전시를 열지 못했네요.” 하지만 그는 일종의 덤처럼 생긴 시간을 더 이롭게 쓰기로 했다. 내년을 더 탄탄하게 준비하고, 개별 전시부터 갤러리 운영에 이르기까지 좀 더 고민하며, 호흡을 고르는 시간으로 말이다.
여성의 삶

2020년 지금, 여성으로 사는 것은 어떤지 오지영에게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오로지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내 생각으로, 나는 어떻게 살까 많이 고민해요. 하지만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고민은 사실 그리 해보지 않았어요. 그간 일했던 환경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오지영은 지금까지 패션에 기반을 둔 소규모 회사들을 경험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런 고민을 할 환경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내가 당당히 일하고, 잘하는 게 중요했거든요. 어떻게 발전할지, 실수했다면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생각해왔어요.”

코로나19를 빼놓고 2020년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이 끈질긴 역병의 피해자이자 경험자가 되었다. 백신 얘기가 세간에 오가는 요즘, 사람들은 ‘코로나19 이후’의 환경을 진지하게 연구한다. 신생 갤러리의 디렉터로서, 오지영은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전시 경험을 선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작품과 작가를 선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영역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중심에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닌 예술이 깃들어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익숙한 데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새롭고 다른 경험에 항상 목말라 있다. 갤러리 샌드위치 apt가 선보이는 전시와 작업은 경험의 차원에서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 그들의 팬으로서 내년, 이 공간에서 펼쳐질 새로운 전시와 움직임을 기대한다. 적어도 갤러리 샌드위치 apt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라면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instagram@ozee577
instagram@sandwich_apt
Written and Photographed by Hong Sukwoo
Video by Sung Cha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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